아시아

[대만] 5살 아이와 함께 떠난 대만 리부트 여행 #1-2

보통의삶 2019.05.15 조회 수 407 추천 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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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아들을 안고 루이팡행 기차에 올랐다. 기차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유리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고 있으니 군 시절 의정부를 거쳐 파주로 복귀하던 길이 떠올랐다. 기차 안에는 지하철만큼은 아니었지만 에어컨도 제법 시원하게 나왔다. 나와 와이프도 에너지를 충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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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선을 하나씩 짚어가며 몇 정거장 남았나 살피다 보니 어느새 환승역인 루이팡을 앞두고 있었다. 우리가 그렇듯 대만 역시 도착역과 그 다음 역을 방송으로 안내하는데, 루이팡 다음 역이 호우통이란다. 분명 개찰구 직원은 루이팡에서 갈아타야 한다고 했다. 잠시 고민을 했지만 방송이 거짓말할 리가 없지 않나. 게다가 아들도 여전히 꿈나라였다. 자리에 앉아서 한 정거장 더 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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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다시 안내방송이 나온다. 진짜 호우통이었다. 조금 어리둥절했지만 결국 얼레벌레 탔던 열차가 바라던 직행이었던 게다. 사실 이 더위에 아들을 안고 환승할 생각 하니 까마득하긴 했다. 시원하고 편안하게 호우통에 도착했다.

 

플랫폼에서 올라와 대합실로 나오니 고양이가 반겨준다. 괜히 고양이 마을이 아니다. 반가운 우리와는 다르게 고양이는 대수롭지 않은 듯했다. 특유의 느긋한 몸짓 안에 짐짓 귀찮아하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고양이가 있다는 말에 아들이 눈을 떴다. 오는 동안 잤던 게 나름 휴식이 됐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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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통은 옛 탄광촌으로 작은 편이다. 역사 한편으로 주민들이 사는 집들이 달동네처럼 붙어 있고 다른 한쪽에는 탄광촌 기념관과 탄광으로 가는 길이 있다. 역사를 나와서 기념관 쪽으로 향했다. 곳곳에 고양이 그림이나 소품 같은 게 마련돼 있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그림인데 약간 일본풍이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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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앞에는 넓은 공터가 있다. 옆으론 제법 큰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너머에 탄광이 있다. 공터에는 역시나 고양이들이 놀고 있다. 몇몇 고양이들은 목에 방울을 차거나 스카프처럼 디자인된 목줄을 하고 있다. 주인이 있는 고양이들이다. 전부가 그런 건 아니었지만 곳곳에 먹이통이 놓여져 있는 걸 보면 고양이 마을답게 잘 관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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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은 사람들이 익숙해보였다. 사람들은 가방에서 간식을 주섬주섬 꺼내어 고양이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애쓴다. 먹이를 주지 말라는 안내판이 있었던 거 같은데 꽤 많은 사람이 간식을 준비해왔다. 아들은 가까이에서 고양이를 보는 게 신기했던지 주위를 뱅글뱅글 돌면서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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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에는 탄광촌의 역사를 설명하는 사진 자료, 모형 등이 정리돼 있다. 내용을 살필 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사진 몇 장 훑어본 게 전부였지만, 흔히 ‘막장’에 비유되는 탄광 노동의 고됨이 강하게 와닿았다. 기념관은 탄광촌의 흥망성쇠가 담겨 있는 역사적인 장소였겠으나,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중요한 건 분명 고양이일 테니... 내부에 작은 카페가 있어서 시원한 음료나 주전부리를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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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아래로는 작은 평상이 마련돼 있는데 주변으로 고양이 집들을 만들어 뒀다. 모양새가 제법 야무지다. 집 지붕에 있는 QR코드를 읽으면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로 이어진다. 신경을 많이 쓴다는 게 느껴졌다. 

 

뒷길은 2-3층 건물로 이어진다. 석탄을 처리하던 폐공장으로 보이는데 잔해만 일부 남아 있다. 기록의 목적으로 보존해둔 것 같다. 건물 끝은 강을 건너는 다리인데 탄광으로 연결되는 철로로 이어진다. 높은 곳에서 주변을 살피니 탄광촌이라는 게 실감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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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 앞에는 안을 둘러볼 수 있는 작은 열차를 운영하고 있었다. 꼭 놀이동산에 있는 유아용 열차같다. 아들이 열차에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약간 불안했다. 탄광을 신기해할 순 있겠으나 아직은 너무 어려서 열차 타는 것 외에는 별 의미가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스펀까지 스케줄을 생각해보면 열차를 타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다행히 아들도 컴컴한 내부가 싫었던지 고개를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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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역사로 길을 돌려서 철로를 지나 기념관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달동네처럼 다닥다닥 집들이 붙어 있었고 그 사이로 작은 길들이 나 있었다. 담벼락 위, 평상 아래, 지붕 옆... 마을 구석구석은 어김없이 고양이들 차지였다. 아들은 골목을 누비며 숨은 고양이를 찾느라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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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거의 다 돌아봤을 때 즈음 저녁이 됐다. 이제는 스펀으로 이동해야 한다. 스펀은 호우통에서 두 정거장. 하지만 열차 시간이 맞지 않아 다음 기차까지는 2~30분 정도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 뭘 좀 먹을까 싶었지만 낮에 열었던 식당은 거의 다 문을 닫았고, 시간도 애매해서 제대로 먹지 못할 것 같았다. 스펀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고 남은 시간은 의자에 앉아서 쉬었다.

 

사실 좀 더 돌아다니고 싶었는데 아들 생각을 하라는 와이프의 만류가 있었다. 그랬다. 새벽부터 바지런히 움직였던 우리는 이미 충분히 무리한 상태였다. 5살 아이에겐 더욱이나 그랬다. 아들 간식을 나눠먹으며 열차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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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열차가 도착했고 스펀으로 이동했다. 8시를 좀 넘은 시각. 역 주변으로는 문을 닫은 가게가 많아 어두컴컴했고 멀리서 풍등이 하나 둘 씩 오르고 있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막차를 놓치면 피곤해질 것 같았다. 시간을 살펴보니 9시 10분 정도. 그러니까 스펀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한 시간이 채 안 됐다. 저녁 먹을 시간까지 생각해보면 여유는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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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이동했다. 철로에 주변으로 여러 가게가 늘어서 있는데 시간이 늦어서 거의 다 닫았다. 몇 개의 풍등 가게만 문을 연 상태였다. 더 들어갈 것도 없이 적극적으로 호객했던 첫 번째 집에서 풍등을 날리기로 했다. 우리처럼 늦게 온 팀이 있어서 아주 썰렁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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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등은 여러 색이 있는데 각각 재물, 건강, 학업처럼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색상에 대한 의미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그림이 잘 보이는 게 중요했다. 보통 주황색이 잘 보인다고 해서 그걸 골랐다. 풍등은 4면으로 돼 있다. 각면에 원하는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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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한 작품씩 그려 그림을 완성했다. 간단한 기념사진을 찍고 드디어 불을 붙였다. 손에서 풍등을 놓기 전, 가게 직원이 영상으로 이 장면을 찍어줬는데 불이 붙은 풍등 안에서부터 밖으로 움직이는 카메라 워크가 인상적이었다. 풍등은 순식간에 하늘로 올라갔다. 생각보다 속도가 빨라서 약간은 허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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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파장할 것 같은 분위기라고 생각한 순간 누군가 폭죽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철로 주변은 조금 더 소란스러워졌다. 옆 가게에는 어느새 단체 관광 팀이 와서 여러 개의 풍등 날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라푼젤의 그것을 꿈꿨던 와이프는 그 모습을 보고는 한껏 상기됐다. 날아오르는 풍등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고 싶던 나머지 나와 아들에게 다급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아들은 두둥실 떠오르는 풍등에 정신이 팔리면서 사진은 실패. 멋진 장면을 놓치지 않았으니 오히려 잘 된 셈이다. 

 

검은 하늘 위로 붉은 등이 반짝이는 게 제법 멋지긴 했다. 풍등은 낮보다는 저녁에 날리는 게 더 낫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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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등 날리기까지, 첫날의 뜻한 바를 모두 이룬 우리는 배가 고파졌다. 부랴부랴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식당을 찾았지만 거의 닫은 뒤였다. 열차를 타고 들어오면서 봤던 식당조차 우리가 풍등을 날리는 사이 다 닫아 버렸다.

 

다행스럽게 풍등 가게들 사이에서 아직 닫지 않은 라면집을 만났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제대로 된 식사는 아니었다. 음식류는 거의 다 마감된 상태였고 인스턴트 라면만 가능했다. 어떻게 하겠냐는 주인의 물음에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라면을 주문했다. 곧 막차가 올 시간이라 그것조차 먹을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그나마 라면에는 약간의 야채와 고기가 토핑으로 올라가 제법 먹을만 했다. 마음이 급한 우리는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평소 와이프는 밥을 빨리 먹는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결혼 전후로 그렇게 빨리 먹는 모습은 처음 봤다. 우리 둘은 번갈아 가면서 뜨거운 국물과 면을 식혀 아들에게 먹였다. 

 

정신없이 먹는 중에 식당 주인까지 시계를 보면서 막차 시간을 이야기한다. 얼마 남지 않았단다. 역까지 거리를 생각해보니 이제는 자리를 일어서야 했다. 아들 걸음이 느려서 내가 먼저 갔다. 역까지 서둘러 뛰어갔는데 이미 열차가 도착해 있었다. 승무원한테 가족이 오고 있다고 말한 뒤 와이프에게 소리쳤다. 세이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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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탄 열차가 핑시선이었던 거 같다. 승무원에게 타이베이를 간다고 했더니 루이팡에서 환승하란다. 루이팡에서도 승무원과 다른 승객들에게 물어물어 무사히 환승했다. 타이베이역을 거쳐 숙소로 돌아오니 11시를 훌쩍 넘겼다. 

 

땀에 찌든 세 식구의 몰골이 참 대단했다. 큰 짜증 없이 따라와 준 아들이 기특했다. 꼬맹이를 위한 스케쥴을 짠다고 했는데 첫날부터 이런 식으로 다녀서 괜히 아들한테 미안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택시를 적절히 탔어야 했다. 첫날이라서 그랬는지 전혀 생각을 못했다. 

 

모두 시원하게 샤워를 마치고 폭풍 같은 첫 날을 마무리했다.

 


 

드디어 하루가 끝났네요. ;; 둘째 날도 곧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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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삶
여행기록자의 운영자. 얼마 전 육아의 늪에 빠져든 이후 당분간 여행은 포기했다.
해묵은 여행 사진을 뒤적이거나 남의 여행기를 탐하고 있다.

7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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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ca
2019.05.15

전투적인 일정이었네요. 확실히 대만은 일본스러운 중국 느낌이 나는 곳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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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삶
2019.05.15 작성자
@spica

첫 날이 가장 어려운 일정이었네요. 탈 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죠.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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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llowknife
2019.05.16

대합실에서부터 반겨주는 고양이,, 고양이 마을인 이유가 있군요~

정말 알찬 일정으로 여행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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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삶
2019.05.16 작성자
@Yellowknife

야외 대합실(베란다 같은 곳)에는 아예 고양이 집들이 놓여져 있더라구요. ㅎㅎ 고양이들이 바글 거려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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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동
2019.05.16

폭풍같은 하루였네요 그 다음 일정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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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삶
2019.05.16 작성자
@서길동

네. 정말 폭풍 같았어요. 핸드폰 만보기 앱을 확인해보니 22일에 1만 7천보, 11km를 걸었다네요. (23일에는 2만보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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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동
2019.05.16
@보통의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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